 |
| ▲ 일주문. 현판은 근세 명필 김돈희1871~1936)가 쓴 것이다. |
|
| ⓒ2006 안병기 |
울력으로 청정한 삶을 가꾸는 비구니들 김천은 경부고속도로와 고속전철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며 옛날엔 안성과 충주, 이리 등과 함께 유기 생산지로서 이름 높았던 곳이다. 1949년에 금릉군에서 떨어져 나와 시로 승격된 김천시는 1995년 1월에 단행한 행정구역 개편 때는 도리어 금릉군을 포함하게 되었으니 세월은 실로 변화무쌍한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키는가 보다.
김천의 최남단의 불령산 자락에는 비구니 사찰인 청암사가 있다. 청암사는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청정도량이다. 몇 년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인상깊은 사진 몇 장을 만났다.
비구니들이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 채마밭에서 수건을 두른 채 일하는 모습과 김장용 배추를 뽑아들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 풍경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한 편의 시였다. 언젠가는 저곳에 꼭 가보리라. 그때 보았던 사진 몇 장이 내 발길을 청암사로 이끌었을 것이다.
추석을 사흘 남겨놓은 3일 오전. 김천역 뒤 시외버스정류소에서 청암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은 이른 새벽부터 득달같이 시내로 달려나와서 추석 대목장을 본 뒤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들로 넘쳐났다.
김천 시내를 벗어나 30여 분가량 달린 버스가 꽤 높고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엉금엉금 기어 올라간다. 옆 자리에 앉은 할머니에게 고개 이름을 물었더니 가막재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 길고 높은 재를 넘어 김천장에 다녔다고 하니 장에 한 번 다녀오려면 얼마나 멀고 힘들었을까. 버스 기사는 이곳에 버스가 다니기 시작한 게 1970년대 말부터였다고 살짝 귀띔한다.
 |
| ▲ 청정 계곡과 바위에 새긴 '최송설당'의 공덕 |
|
| ⓒ2006 안병기 |
도교와 불교가 합쳐 흐르는 '불령동천(佛靈洞天)' 증산면 소재지를 지나자 버스는 금세 종점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려서 곧장 청암사를 향해 걸어간다. 진입로를 걸어가는데 공기가 어찌나 맑은지 머릿속까지 개운해지는 듯하다. 차로 가는 길은 두 눈만을 만족시킬 뿐이지만 이렇게 걸어가는 길은 인간이 가진 오관을 두루 만족시킨다.
일주문을 지나서 아름드리 전나무와 굴참나무가 줄지어 선 사이로 가다 보니 오른쪽에 '우비천'이라고 쓰인 샘이 나온다. 청암사가 소가 왼쪽으로 누워있는 와우형인데 이 샘이 바로 코 부분에 해당되어 '우비천' 혹은 '코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샘 옆에 붙여진 안내문에는 "예로부터 이 샘에서 물이 나오면 청암사는 물론 증산면 일대가 부자가 된다고 하며 이 물을 먹으면 부자가 된다는 전설 때문에 재물을 멀리하는 스님들은 이 샘 앞을 지날 때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기도 했다"라고 쓰여있다. 마시지 않으면 그만일 터인데 굳이 얼굴까지 가릴 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산자락에 선 사적비를 건성으로 한 번 훑어본다. 천왕문을 냉큼 지나서 절 입구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나그네의 눈길을 붙잡는 것은 바위에 새겨진 '불령동천(佛靈洞天)'이라는 글자다. 블령이란 불교를 말하고 동천이란 신선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도교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말이다. 불교가 도교를 끌어안은 것이다. 청암사는 불령동천이라 부르는 북쪽에 있는 계곡의 아랫자락에 있다.
바위에 새겨진 낙서에는 '최송설당'이라 쓰인 글씨가 자주 눈에 띈다. 최송설당은 조선말의 상궁이었다고 전해지는데 고종과 엄비 사이에서 태어난 영친왕의 유모였다고 한다. 순종을 낳은 명성황후와 엄비의 갈등 사이에서도 최상궁은 변함없이 영친왕을 돌보았는데 그 공로로 하사받은 금품으로써 오늘의 청암사를 재건했다고 한다. 바위에 새겨진 낙서들은 그런 최송설당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것이리라.
 |
| ▲ 대웅전 영역. 중앙에 있는 건물이 정법루이며 좌측 건물이 육화료, 파란 기와집이 대웅전이다. |
|
| ⓒ2006 안병기 |
청류가 구비치는 계곡을 건너가면 858년(신라 헌안왕 2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유서깊은 절 청암사가 '동지섣달 꽃본 듯이' 얼굴을 내민다.
청암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구역으로 나뉜다. 계곡 북쪽의 낮은 곳에 남향으로 자리 잡은 대웅전 영역과 그 남쪽 언덕 위의 극락전 영역이다.
대웅전 영역에는 육화료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건물이 눈에 띈다. 새을(乙)자 형에 귀틀을 지닌 전각으로서 108평이나 되는 너른 방을 가진 승가대학의 중심을 이루는 건물이다.
육화란 깨달음을 구하고 깨끗한 행을 닦되, 서로 친절하고 경애하는 신(身), 구(口), 의(意), 戒(계), 견(見), 이(利) 등 여섯 가지 법으로서 화합하여 마침내 사자굴 안에서는 모두 사자가 되고, 전단나무 숲에서는 순전히 전단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승가의 실천 내용이다.
비구니 스님들이 바삐 오간다. 세속의 욕망을 저버린 사람들이라서 저리도 아름다운 것인가. 송수권의 '여승'이란 시가 떠오른다. 그의 시는 실제 여승을 보는 것보다 훨씬 고혹적이다.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종일 방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집 처마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발치로 바리때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 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
(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
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서서 합장을 하고
오던 길로 뒤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에
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여승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
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만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송수권 시 '여승' 전문 시인은 "내 가슴이 (여승을 처음 봤던)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라고 말한다.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저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리라. 어린 시절에 난 동네에 탁발온 스님을 보면 뒤쫓아가면서 "중중 까까중, 햇볕은 쨍쨍 대머리는 반짝"하며 놀려대곤 했었다.
 |
| ▲ 다포양식과 익공양식을 절충한 전각인 극락전. |
|
| ⓒ2006 안병기 |
인현왕후의 한을 품고 있는 극락전 언덕 위에 있는 극락전은 단청 칠이 벗겨진 탓인지 사뭇 애잔하게 보인다. 극락전은 조선시대 숙종의 왕비였던 인현왕후가 복위를 기다리며 한 많은 세월을 보냈던 곳이다. 건물에도 궁궐 건축양식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1911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중수했는데 다포양식과 익공양식을 절충한 전통적인 건축양식이다. 특히 툭 튀어나온 계자난간이 옷깃에 달린 레이스처럼 아름답다.
인현왕후와의 인연으로 청암사는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고 불령산 적송산림은 국가보호림으로 지정되어 궁에서 무기 등이 하사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곧고 크게 잘 자란 이곳의 나무들이 근래에 이뤄진 직지사 복원사업에 많이 쓰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황악산 직지사는 청암사의 본사다.
 |
| ▲ 극락전 뒤곁에 있는 보광전. |
|
| ⓒ2006 안병기 |
 |
| ▲ 보광전 우측 외벽에 그려진 용그림 |
|
| ⓒ2006 안병기 |
극락전 뒤채인 보광전에는 42개의 손으로 중생의 고통을 어루만진다는 42수관음상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원래의 불상을 도둑맞은 뒤에 새로 모신 것이라고 한다.
보광전 역시 나무 결이 그대로 들어난 낡은 건물이다. 자연스럽게 닳아져 세월 속으로 가만히 스며들 줄 아는 나무들의 한살이. 사람도 저렇게 보기 좋게 늙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극락전과 보광전으로 들어가는 대문 앞에는 배추가 심어져 있다. 해우소에서 만들어진 거름과 낙엽 등 잘 썩은 거름에다 한 해 동안 밭에 묻어 둬 썩힌 음식물 찌꺼기 따위를 밭에 퇴비로 뿌려서 이렇게 작물을 직접 가꾸는 것이다.
배추, 무, 열무, 고추 등 온갖 작물을 기르기 위한 비구니들의 울력은 이른 봄에서 늦가을까지 계속되는데 하루에 한두 시간쯤이라고 한다.
청암사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비구니 사찰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도 말라" 하던 백장선사의 서슬푸른 청규가 살아있는 실천도량이기 때문일 것이다.
 |
| ▲ 부도전 안에 있는 고봉 스님의 부도탑 |
|
| ⓒ2006 안병기 |
전통 불교강원의 맥을 이어오다 청암사는 불교 강원으로서 그 이름과 자취가 뚜렸하다. 17c말의 강백이자 선사였던 회암정혜 스님로부터 이어받은 전통의 강원이 있다. 회암스님은 화엄학에 정통한 교학의 대가였다고 한다.
그의 가르침이 제자들을 통해서 끈끈하게 이어져 오다가 근래에 이르러 고봉이라는 선교를 겸비한 걸출한 선지식을 배출해내기에 이르렀다. 고봉(1901~1969) 스님은 해인사, 범어사, 청암사 강원의 강주를 맡아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기도 했다.
1987년 현재 주지이자 강주인 지형스님이 청암사 내에 비구니 승가대학을 설립하고 낡은 도량을 보수하고 부속건물을 신축함으로써 전통강원의 맥을 더욱 튼튼하게 뿌리내렸다. 청암사는 현재 140여 명의 눈 푸른 비구니 스님들이 부처님 경전공부와 더불어 수행의 향기를 쌓아가고 있다고 한다.
 |
| ▲ 푸세식의 전통 해우소. |
|
| ⓒ2006 안병기 |
청암사는 상상의 마을 '동천'에 있다 우리나라 절간에 전통해우소가 남아 있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석남사, 송광사, 선암사, 실상사, 청암사, 연곡사, 보덕사, 개심사, 다솔사, 김룡사 등등.
아직도 푸세식의 청암사 해우소의 분뇨들은 기타 음식물과 함께 11번이나 걸러져서 농작물의 퇴비로 쓰인다고 한다. 최은섭의 동화집 <향기나는 바람개비> 중 여덟번 째 이야기 '청암사 정랑을 아시나요'에는 똥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똥은 그것을 눈 사람을 닮는다고 말한다.
백련암으로 가기 위해 청암사를 나서기 전 계곡 옆에 잠깐 앉아 쉰다. 길 아래로 맑디 맑은 물이 유유자적 흘러간다. 어디로 흘러가느냐고 물더러 묻지 않은 채 내 마음도 그냥 따라 흘러간다. 물과 그 물을 담는 그릇으로 이루어진 나.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연약한 고체는 어느덧 해체되어 물처럼 흘러간다. 마음이 저절로 평안해진다.
사람은 왜 물을 보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걸까. 일찍이 노자는 '수선리만물이부쟁(水善利萬物而不爭)'이라고 했다. 물은 만물에 이로움을 줄 뿐 다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계곡물은 옆에서 흘러든 물더러 왜 내 앞에 끼어드느냐고 따지지도 않고 핏대를 세우지도 않는다. 용인한다는 것. 상대를 내 안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평안케 하는 일에 다름아니다.
지리산과 불령산이라는 공간적 거리를 무시한다면 청암사는 마치 고은 시인의 시 '천운사운'을 연상케 한다.
"그이들끼리/ 살데.//골짜구니 아래도 그 우에도/ 그들의 얼얼이 떠서/ 바람으로 들리데."
-고은 시 '천운사운' 일부 어쩌면 청암사가 있는 곳은 불령산 골짜기가 아니라 신선이 산다는 상상의 마을 '동천'인지도 모른다. 어렵게 찾아온 이상향인 '동천'을 차마 떠나기 싫어서 마음 한 가닥을 불령산 골짜기를 떠도는 바람에다 묻고 간다.
행여 그대가 이 다음에 청암사에 가서 극락전 풍경 소리를 듣거든 차마 이곳을 떠나지 못한 내 마음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하시기를….